비영속적 아름다움의 포용을 시작으로 작업물을 향한 이해관계의 충돌까지 — 보킴 작가노트
Impermanence (2016-2017)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라는 주제로 2016년 첫 평면 작품 시리즈 ‘Impermanence’를 만들었다. 불교사상에서 비롯된 비 영속성의 뜻을 인용하여, 석고가루와 오일 페인트를 섞어 캔버스 위에 방충망을 얹고 그 위에 펴 발랐다. 완벽한 격자무늬로 이루어진 방충망 위에 얹힌 덩어리의 일부는 캔버스 위에 남고, 그 외의 많은 부분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남아있는 부분 중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각 져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발견했고, 그 위에 잔재의 형상, 격자무늬의 페인트 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난 비 영속성의 아름다움이라 정의하고 시리즈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비 영속성의 아름다움을 포용하는 것과 미술 작품의 보존성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비 영속성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되 작품으로서의 보존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어 오일 페인트 대신 물의 성분으로 이루어진 아크릴 페인트를 석고 가루와 섞어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떨어져 나가는 조각들을 전시의 일부로 포함시킴으로써 비 영속성을 표현하는 시각적 효과를 주었다.
Imperfection ~ 아로새기다, When light is put away (2017- 현재)
‘Impermanence’ 연작을 통해 사각형이란 평면 작품의 틀 안에서 비 영속성을 표현하였고 작년 <아로새기다, When light is put away> 전시를 통해 나무처럼 기다란 200 x 25 cm 캔버스 작품을 비스듬히 세워 ‘나이테’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연륜을 새겨가는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처럼, 나무도 시간이 지나 세월을 맞이하면서 더 울퉁불퉁해지며 숭숭 구멍이 뚫리게 된다. 나는 그 구멍과 같은 약간의 먹먹한 감정을 ‘나이테’라는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전에는 불교 사상의 아이디어를 담아 작품을 만들었다면, 작년 전시는 비 영속성이라는 아이디어를 개인적인 서사와 연결하여, 좀 더 나의 개인적인 정서를 담아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6년에 시작된 벽에 걸린 평면 작품의 시리즈에서, 5년 뒤인 2021년에 설치 작품과 평면, 그 경계 어딘가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나이테를 사진 찍어 캔버스에 프린트하였고,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한 후 모래를 뿌리고 다시 한지로 자글자글한 주름을 부분적으로 만들어 캔버스를 감쌌다. 그 후 풀칠을 하고 흙을 뒤덮은 후 남겨진 흙은 밑에 두는 형식으로 전시하였다.
Impermanence (2022)
설치 작품으로 이루어진 BHAK에서의 첫 전시, <Impermanence>에서의 ‘빙화(氷花)’는 얼음과 꽃으로 이루어진 조각/설치 작품이다. 얼음은 무언가를 최대한 오래 싱싱하게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낮은 온도를 이용해 무언가를 파괴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 얼음은 주변 환경의 온도가 올라가는 순간, 그 형상은 사라지고 녹아버린다. 그리고 얼음은 차가운 액체로 변해서 차차 미지근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로 증발한다. 공기로 증발하기 전, 그 액체는 깨끗하게 보존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발자국에 더러워질 수도 있다. 나뭇잎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얼음은 무언가를 지키려 하지만, 녹아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결국 시간이 흐르며, 형상이 또 변화한다.
빙화(氷花)는 내가 직접 겪어 왔던 삶 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일어날 수 있는 현상, 환경, 그리고 시간을 지체하려는 깊숙이 내재된 자아들이 곳곳에서 충돌하지만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마음을 투영한다. 이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드린 이전 ‘Impermanence’ 시리즈와 상충한다. 작품이 설치되는 날을 시작으로 얼음은 천천히 녹아내린다. 시간의 흐름을 지체하기위한 퍼포먼스의 일부로 일정한 시간에 맞춰 냉각 스프레이를 뿌리지만 결국 나의 손이 닿지 않는 시간에 결국 모두 녹아내릴 것이고, 젖어있는 꽃은 서서히 말라가고 색이 바래지며, 액체가 되어버린 얼음은 짙은 향기만 남긴 채, 나무 기둥 모양의 아크릴 통에 간직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며 세월이라는 강물에 떠내려가기 전에, 나를,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부단히 지키려 한다. 건강한 나의 몸을, 팽팽한 나의 얼굴을,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친구와의 우정을,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의 사랑, 노력의 결실로 얻게 된 가치들을 지키려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조금씩은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며, 그 경험의 반복을 통해 변화를 수용하는 성숙함을 배우게 된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전시 첫날과 둘째 날, 한 시간에 한 번씩 얼음조각에 냉각 스프레이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가질 예정이다.
‘Imperfection’ 과 ‘아로새기다’의 시리즈에서 한지의 중첩이 시간의 중첩, 기억의 희미해짐을 내포하듯이, 일정한 크기로 잘라 조금씩 엇갈려 쌓은 얼음은 ‘시간의 중첩’,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발견되는 많은 현상을 내포한다. 또한 얼음조각을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 형태의 통 안에 녹은 얼음이 꽃물과 함께 흘러내리며 속에 들어간 한지를 물들게 하고, 그것은 시간의 변화를 기록하게 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얼음이라는 비 영속적 물질과 아크릴이라는 비교적 영속적인 물질이 만나, 이 전시를 통해 비 영속성과 작품의 보존성의 이해 충돌을 또 한 번 경험한다.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그 순간을, 무언가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그것을 잡으려 무던히 애쓴다. 하지만 녹아버리는 얼음처럼, 결국 시들고 마는 꽃처럼, 우리의 환경과 상황, 몸과 마음의 형태는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꽃의 잔향처럼, 이 모두가 결국 우리 인생의 일부로 남아있게 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Passage of Time, 2022
시간의 변화를 제일 쉽게 직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작업실이다. 작업실 창 너머로 하루 동안의 변화를 마주하고 무성한 나뭇잎의 변화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한다. 이번 영상 작품은 작업실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을 향해 cctv를 설치하여,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갤러리에 송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작가가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던 곳을 실시간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관객은 화면을 그대로 직면하지 않고 화면 위에 설치된 아크릴 판을 통해 화면을 본다. 아크릴 판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레이어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투명에서 투명으로 바뀐듯한 효과를 준다. 이러한 시각적인 효과는 관객이 받아들이는 시간의 개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과거, 현재, 미래로 보았을 때 ‘현재’의 기준은 그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하루가 될 수도, 계절이 될 수도, 그 해가 될 수도 있다. 현재의 기준을 순간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리고 직선형을 절대적 시간으로 바라본다면, 현재의 순간은 찰나이고 시간이 흐른 순간 과거가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시각에서, 상대적 시간으로 바라본다면, 그 순간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현재, 과거, 미래에 대한 시간의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향할수록 형상과 색이 선명해지는 이미지는 직선적인 시간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희미함과 일정하게 배치되어 있는 작은 점들은 상대적 시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1년 동안 녹화될 이 영상은 1년 후, 실시간 송출이 아닌 녹화 본으로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질 것이다. 예를 들어 2023년 3월 11일 오후 5시에, 2022년 3월 11일 오후 5시의 영상을 틀어 관객들은 과거의 같은 날, 같은 시간 때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투영하면서 현재와 과거를 어우르며 완성이 된다.